이런 이야기는 되도록 지양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내 안에 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차후에 지울 수도 있다.
오태민 작가가 달라졌다.
그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였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distributed 가 핵심인 비트코인이
그들로 인해 distributed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오태민 작가가 있었다.
세상에 가장 이로운 지식이든, 기술이든
그것이 채택되지 못하고, 올바르게 쓰이지 못하는 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준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가진 본연의 철학에 기반하여
올바르게 쓰이려면 비트코인을 모으는 자들이 생기면 안 된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대한 지양할 수는 있다.
그게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가장 막은 자들이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모은 자들이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이다.
역겨웠다.
누가 망치고 있는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가장 완벽한 창조물을 누가 망치고 있는가?
최근 오태민 작가를 보면 달라진 게 느껴진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 비트코인을 추앙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면서
비트코인이 이 세상에 올바르게 정착하는 데
전혀 기여하고 있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저 사람 비트코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긴 한건가
의심이 들었었다.
타의에 의해 그의 책을 몇 차례 읽었을 때에도
그가 정령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 이해한 그의 생각을 추종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모습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비트코인을 잘못 이해하면,
그 색안경은 최소 10년은 벗겨지지 않는다.
그동안 이 시장에서 이 현상을 지켜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만큼 비트코인은 무섭다.
잘못 이해하면, 끝이다.
그러나 본인이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주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함정이다.
그런데 오태민 작가가 최근에 달라졌다.
철옹성처럼 자신의 의견이 아니면 수용하지 않던 자가
20년 정도 그래도 갈리고 깎여서 그런 걸까.
이제야 조금 비트코인에 대해 이해한 모습이 보인다.
인상도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아직 멀었다.
비트코인은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진짜 시작은 AI와 Blockchain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표층 수준에서 현재 인류를 뒤흔드는 기술은 AI다.
이건 피부로 체감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심층 수준에서 현재 인류를 뒤흔드는 기술은 Blockchain이다.
이건 피부로 와닿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표층의 AI와 심층의 Blockchain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경계가 형성된다.
거기서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지 않을 것이다.
AI와 Blockchain은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걸 모른다면, 비트코인을 이해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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