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03월 04일 시간 모름, 러시아 모스크바
- 크로스 테마 의식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Communist International) 의 약자로, 레닌과 볼셰비키 정권이 세계 혁명을 지도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 공산주의 기구
식민지 민족해방 운동을 지원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의 후방을 흔든다는 주장이 있었다.
당시 일제 식민 지배를 받던 한인 독립운동가들에게 코민테른의 무기와 자금 지원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과 같았다.
코민테른은 ‘1국 1당’ 원칙이 있었고, 이는 한 국가에서 하나의 공산당만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려공산당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의 두 정당이 있었고, 두 정당간에 코민테른의 정통 승인을 받기 위한 주도권 싸움이 있었다.
이르쿠츠크파는 복종을 통한 완전 흡수를 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청산리 대첩의 주역인 김좌진, 이범석, 서일 은 만주로 돌아갔고
이르쿠츠크파의 무장 해제에 저항하던 독립군들은 사살되거나 포로로 이송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지청천 장군, 봉오동 대첩의 홍범도 장군도 포로로 이송되었다.
이 과정에서 홍범도 장군은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였고, 여기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만주 일대 독립군의 정예 병력과 무기 체계가 해체되었고, 많은 대원들과 동지들의 희생을 질책하던 서일 선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끔찍한 결과의 배경에는 당시 소련이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본과의 외교에서 한인 독립군들을 활동하게 둔다면, 일본이 소련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이었다.
또한 공산주의는 독재와 통제 체제로 귀결되지 않으면 현실 적용이 어렵다는 근본적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이 이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런 심각한 결과를 통해 완벽하게 보여준 것이다.
자유시 참변: 1921년 06월 28일 오후 4시, 러시아 스보보드니
- 크로스 테마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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