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 전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어렸을 때 공부는 못했지만, 글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1983년 소설가로 등단하여,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1996년 명계남, 문성근의 후원으로 이스트 필름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한석규 주연의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박하사탕>은 1999년 개봉한 그의 두 번째 영화였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당시 시대적 배경을 참고한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참고하면, 영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는 대단히 오묘한 느낌이 있다.
움직이는 예술 작품과 같은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문화적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도 그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깊은 뭔가가 있다.
색감이랄까, 색채감이랄까
영화, 소설, 시
이런 문학 작품의 세계는 정말 매력적이다.
이 가치를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이쪽으로 꿈을 꾸었을 것 같다.
너무 너무 매력적이다.
그의 <박하사탕>은 이 시대의 배경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너무나도 우리 삶에 깊숙히 배어 있어서 아마도 그래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거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 배어있는 것이 인간의 삶의 상당 부분을 결정 짓는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뜻대로 되는 걸까.
거기에는 이런 배경이라는 요소가 한 몫 한다.
평소에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우리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박하사탕. 영화에서 박하사탕은 말 그대로 박하사탕이었다.
그 순수함이 주는 가치는 마치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볼 때 느끼는 그러한 느낌, 정화되는 느낌, 간직하고 싶은 느낌과 상통한다.
과연 이 시대에 누가 잘못했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잘못된 거고, 누가 잘못되지 않을 것일까.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게 되어 있을까.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만큼 인식이 없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계속해서 축적되어
다시 이 시대의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 새로운 인류는 다시 그 무거운 배경 속에 살아간다.
자신들이 왜 무거워지는지 알지 못한 채 무거워지면서 살아간다.
그의 영화 경력 초반에 제작된 영화 <박하사탕>
남는 것은 그의 철학이다. 그의 철학이 남는다.
철학이 남는다. 남는 것은 철학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가 남는다.
그것이 어둡고 무겁게 잔뜩 쌓여버린 이 시대의 배경을 정화한다.
인류를 위해 예술 활동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와 그의 작품, 그리고 배우들, 제작진들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배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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